2025년 7월 1일부터 서울 시내 공원에서 비둘기나 까치, 참새 등 유해 야생 동물에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는 이 같은 조치의 배경으로 "배설물로 인한 위생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픈 비둘기나 다친 비둘기도? 인간 위주로 재편된 지구에 적응해 번성하면 '유해 동물', 못 버티고 죽어가면 '천연기념물'이 된다.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폐를 끼치는데도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못 할망정.
공존은 원래 불편한 거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녀도 한집에 사는 게...
2025년 7월 1일부터 서울 시내 공원에서 비둘기나 까치, 참새 등 유해 야생 동물에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는 이 같은 조치의 배경으로 "배설물로 인한 위생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픈 비둘기나 다친 비둘기도? 인간 위주로 재편된 지구에 적응해 번성하면 '유해 동물', 못 버티고 죽어가면 '천연기념물'이 된다.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폐를 끼치는데도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못 할망정.
공존은 원래 불편한 거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녀도 한집에 사는 게 쉽지 않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뱃속으로 다시 집어넣고 싶을 때가 있는 법.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고 공존하겠다는 것은 허상이다.
갈등 상황이 아니라 갈등 대상을 해결(?)해 버리겠다는 발상은 시대정신에 반한다. 위와 같은 조치에 앞서, 배설물이 아니라 비둘기를 치워버릴 궁리 끝에, 비둘기와 배설물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위험 균이 발견되면 여론을 모아 간단히 치워버릴 속셈이었으나, 의외로(?) 비둘기는 깨끗했다. 손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의 날씨에도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하는 비둘기의 청결한 습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업 과정 중 가장 즐거운 건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다. 아이디어는 체험에서 발아된다. 비둘기 관찰 시작. 비둘기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뒷짐을 지고 바삐 걷는 신사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켜보니 역시 새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 때가 제일 멋지다. 하늘을 날 수 있다니! 사람들은 비둘기를 비하하고 조롱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해내지 못하는걸, 그들은 간단히 해낸다.
이따금 무언가에 놀란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완벽한 시선 처리에 걸맞은 뛰어난 방향 전환 능력과 유연한 비행 스타일에 탄성이 터진다. 아무리 큰 무리라도 비둘기끼리 부딪치는 일은 없다. 무질서 속의 질서. 만약 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질서에 인간이 개입한다면? 상상력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문득 '이거다!' 싶다. 문명을 상징하는 문자! 이왕이면 한글이 좋겠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지구인 중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같은 종도 못 알아듣는 언어로 규칙을 세우고, (산아 제한, 배설 금지, 접근 금지 같은) 동물들을 다그치는 세태를 빗댈 수 있을 테니.
무엇보다 비둘기는 약 2,000년 간 '전서구'로 활약해 왔다.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외래종인 비둘기가 도시에 너무 잘 적응한 나머지 텃새들보다 흔한 새가 되었으니, 인간의 규칙과 질서를 가장 잘 이해한 셈. 그러니 이것은 비둘기의 메시지이기도 할 터다.
촬영이 시작되니 생각지 못한 온갖 문제들이 나타난다. 일단 비둘기가 너무 빠르다. 순식간에 앵글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평균 시속 60~70km, 최고 시속은 112km다. 셔터속도를 올리려면 조리개를 열어야 한다. 조리개를 열면 심도가 얕아져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난감하다.
망원렌즈를 삼각대에 올려두고 일시에 날아오를 때를 기다린다.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기회가 찾아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건다. 궁금한 모양이다. 비둘기는 유해 동물이라 찍어봐야 쓸모가 없다고, 겨울 철새들이나 찍으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하루에 몇 번 안 되는 기회를 놓칠까 조마조마하다.
바람이 3m/s 이상이면 날지 않는다. 매일 아침 풍속을 점검한다. 우연인지 습성인지 가는 곳마다 비둘기들이 태양을 등지고 있다. 덕분에 나는 늘 태양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처지. 눈이 부시다. 한겨울에 얼굴이 시꺼멓게 탄 건 덤. 코끝이 얼어붙는 추위가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렸는데, 봄이 되니 구름 한 점이 없다. 역광에 컨트라스트가 너무 강해 허탕 치는 날이 많다. 마음이 급해진다.
후반 작업은 비둘기를 오리고 붙여 글자 모양을 만드는 것. 비슷한 몸짓의 비둘기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어 본다. 날개의 미묘한 각도 차이로 글자 모양이 어색해진다. 애써 모았는데 개수가 부족해도 꽝. 컷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한땀 한땀 자음을 만든다.
다음은 하늘 고르기. 나의 보석함을 연다. 그동안 모아온 멋진 하늘들이 반짝인다. 비둘기에게 멋진 하늘을 선물하고 싶다. 이 사진을 들여다봐 줄 다정한 사람들에게도. 하늘의 아름다움은 우주가 건넨 선물이다. 꽃을 고르듯 하늘을 고른다.
비둘기가 차지하는 면적을 떠올리며, 비둘기의 크기와 농도를 정한다. 단순히 붙여 넣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역시나 미묘하게 어긋난다. 결국 어렵게 만든 자음의 절반은 사용하지 못한 채 남겨진다. 너무 아깝다.
마무리 작업. 비둘기를 꼼꼼하게 다시 손질한다. 카메라는 신묘한 기기다. 비둘기 실루엣을 따라 라인이 생기고, 깃털에는 주변의 색이 묻어난다. 태양 빛이 산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지 메커니즘을 알 수가 없다. 그저 일일이 닦아낼 수밖에.
휴대전화에도 있는 배경 지우기 기능이 포토샵에 없을 리 만무하지만, 최신 펌웨어도 내가 만족할 만큼의 성능을 보여주진 못한다. 고작 2센티 정도로 보여줄 비둘기를 300~400백 배로 확대해 화면 가득 채우고 지우개로 꼼꼼하게 닦아낸다. 돋보기로 본다면 모를까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일이다. 혹 누가 알아봐 준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좀 무섭지 않을까.
예술이 무슨 고생 올림픽도 아니고, 품이 많이 든다. 눈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다. 레이어를 복사해서 붙이면 간단할 일이다. 글자 모양도 더 단정해질 테고. 알면서도 어린 비둘기의 싱싱한 몸과 나이 든 얼굴의 비둘기, 상한 깃털과 비둘기가 물고 가는 나뭇가지까지 정성껏 다듬는다. 제법 귀여운 얼굴도 있고, 몸짓이 애교스러운 개체도 있다. 입 모양이 웃는 상인 비둘기를 보면 저절로 따라 웃게 된다. 다친 날개로도 멋지게 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하나하나 귀하게 쓰다듬는 일이 고생스럽긴 해도 싫지는 않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드는 것. 그만큼 태도와 진심이 묻어나는 일이 또 있을까.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일, 건당 150원을 주는 리뷰 작성보다 돈 안 되는 일(엄밀히 말하면 돈이 드는 일)에 미간에 주름 잡아가며 진지하게 열과 성을 다하는 것. 예술의 본질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